단 한 번의 삶: 김영하가 건네는 내밀한 자기 고백과 삶의 질문들
6년 만이다. 『여행의 이유』로 수많은 독자에게 여행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안겨주었던 작가 김영하가 새로운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으로 돌아왔다.1 현대인의 삶을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해 온 그이기에 5, 이번 신작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제목 자체에서부터 묵직한 성찰의 무게가 느껴진다.1
이 책은 작가가 유료 이메일 구독 서비스 '영하의 날씨'를 통해 먼저 독자들과 나눴던 글들을 대폭 수정하고 다듬어 묶은 것이다.1 뉴스레터라는 좀 더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에서 시작된 이야기인 만큼, 책에는 작가의 이전 산문들보다 한층 더 깊은 개인적 경험과 고민이 담겨 있다.
작가는 책 속에서 스스로 이렇게 고백한다. "때로 어떤 예감을 받을 때가 있다. 아, 이건 이 작가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로구나. 내겐 이 책이 그런 것 같다.".2 이는 그가 처음에 구상했던 '인생 사용법'이라는 제목을 포기하고 1, "내가 인생에 대해서 자신 있게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내게 '단 한 번의 삶'이 주어졌다는 것뿐"이라는 겸허한 깨달음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1 제목의 변화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드러낸다. 삶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나 지침을 제공하기보다는,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불공평한 우리 각자의 유일무이한 삶 그 자체를 깊이 사유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고백은 이 책이 탄생한 배경과도 깊이 연결된다. 작가가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라고 느낀 데에는,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사건과 1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선 시기적 성찰이 1 맞물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 모음집을 넘어, 한 인간이 삶의 특정 시점에서 길어 올린 깊고 진솔한 자기 고백이자, 독자들에게 자신의 '단 한 번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조용한 초대장이다.
과거를 마주하다: 기억, 비밀, 그리고 타인의 불가해성
『단 한 번의 삶』은 작가 어머니의 빈소에서 시작된다.1 알츠하이머를 앓다 돌아가신 어머니, 평생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제대로 들려준 적 없던 어머니의 숨겨진 과거가 조문객들을 통해 드러난다. 젊은 시절 여군이었고, 주말이면 세련된 양장을 입고 명동 거리를 활보했던 도회적인 여성이었다는 사실 ('엄마의 비밀' 1). 이 예기치 못한 발견은 작가로 하여금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존재에 대해서조차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 채 살아가는지를 깨닫게 한다.1 사람들은 즐겨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에 더 중요한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때가 많다는 15 작가의 말처럼, 타인의 삶은 마치 중간부터 보게 된 영화와 같아서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아버지와의 관계 역시 '기대와 실망의 왈츠'라는 제목의 글에서 섬세하게 그려진다.1 아버지에게 품었던 첫 기대와 그에 뒤따랐던 실망, 그리고 은퇴 후 양봉과 버섯 재배를 시도했지만 결국 병마에 쓰러진 아버지의 뒷모습을 통해 7, 작가는 한 인간의 삶과 관계의 복잡한 궤적을 따라간다.
이러한 가족 이야기는 단순한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어머니의 비밀, 아버지와의 관계 같은 구체적인 경험을 출발점 삼아 기억의 주관성, 타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의 어려움, 가족이라는 관계의 다층적인 본질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으로 나아간다.1 '야로의 희망' 1 같은 글에서는 아마도 어머니가 보여준 삶의 방식이나 지혜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인간 내면의 복잡성과 강인함을 탐색하는 듯하다. 이처럼 개인적인 일화들은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사유하게 만드는 강력한 촉매제가 된다. 가장 가까운 이들의 삶에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깊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은 타인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고 관계 속의 모호함을 받아들이도록 이끈다.
『단 한 번의 삶』 속 주요 이야기와 주제
언급된 장/주제 | 관련 자료 | 간략한 설명/의미 |
일회용 인생 (Disposable Life) | 1 | 삶의 유일회성에 담긴 의미와 무게 탐구 |
엄마의 비밀 (Mom's Secret) | 1 (암시) | 어머니의 숨겨진 과거를 통해 타인 이해의 한계를 성찰 |
기대와 실망의 왈츠 (Waltz of E&D) | 1 (암시) | 아버지와의 복잡하고 변화하는 관계에 대한 회고 |
야로의 희망 (Yaro's Hope) | 1 | 어머니와 관련된 일화일 가능성, 삶의 지혜나 강인함 탐색 추정 |
테세우스의 배 (Ship of Theseus) | 1 | 정체성의 연속성과 변화에 대한 철학적 질문 제기 |
인생 사용법 (Life User Manual - 구상) | 1 | 작가가 초기에 구상했으나 포기한, 삶에 대한 규범적 접근 방식 |
'나'라는 질문: 나는 어떻게 내가 되었는가?
책의 중심에는 "나는 어떻게 내가 되었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놓여 있다.1 작가는 자신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며 과거의 경험들이 현재의 자신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테세우스의 배'라는 철학적 비유를 끌어온다.1 배의 모든 부품이 시간이 지나면서 교체된다면, 그것은 여전히 같은 배인가? 마찬가지로 우리의 경험, 생각, 신념, 심지어 세포까지 끊임없이 변화한다면, 우리는 과연 동일한 존재인가? 작가는 "20대의 나는 길에서 마주쳐도 지금의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지금의 나 역시 10대의 나를 그냥 지나칠 것"이라고 말하며 18, 정체성의 유동성을 이야기한다.
'일회용 인생'이라는 표현은 1 이러한 성찰에 무게감을 더한다. 단 한 번 주어지는 삶이기에, 그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완성해야 할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암시한다 ("나에게는 이 삶을 잘 완성할 책임이 있다" 1). 작가는 자신의 유년 시절,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 작가로서의 삶 등 개인적인 여정을 6 솔직하게 드러내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선다.
이 책이 '영하의 날씨'라는 비교적 사적인 공간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은 1 흥미롭다. 뉴스레터를 통해 처음 공유되었을 독자들과의 내밀한 교감 속에서 탄생한 글들은, 책으로 엮이는 과정에서 더욱 정제되고 보편적인 울림을 갖도록 다듬어졌을 것이다. 이는 개인적인 고백을 넘어서,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과 연결하려는 작가의 노력을 보여준다. 테세우스의 배 비유와 개인적인 변화에 대한 성찰, 그리고 부모님조차 완전히 알 수 없었다는 깨달음은 결국 '나'라는 존재 역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성되는 과정 속에 있음을 받아들이게 한다. 이 책은 명확한 자기 정의를 내리기보다, 그 모호함 속에서 삶의 여정을 지속하는 것의 의미를 묻는다.
쉬운 위로 너머: 함께 사유하는 시간
이 책은 삶에 대한 쉬운 위로나 섣부른 조언을 건네지 않는다.1 '인생 사용법'이라는 제목을 포기한 것에서 알 수 있듯 1, 작가는 삶의 복잡성을 단순화하거나 정답을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질문들을 독자에게 던짐으로써 각자의 삶을 성찰하도록 이끈다.1 작가는 인터뷰에서 문학에서 배운, 직접적이지 않은 언어를 통해 삶의 질문들을 탐색하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19 이는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식의 단언적인 메시지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독자 스스로 생각할 여백을 마련해주는 방식이다.
김영하는 자신의 솔직하고 때로는 취약한 개인사 – 가족 이야기, 작가로서의 고민, 나이 듦에 대한 생각 등 – 를 1 모방해야 할 모범 사례가 아닌, 우리 모두가 마주하는 보편적인 인간적 고민들(상실, 정체성, 의미, 시간의 흐름)을 함께 사유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책은 독자를 지혜를 전수받는 학생이 아니라, 각자의 '단 한 번의 삶'을 이해하려는 여정에 동참하는 동반자로 초대한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통해, 독자는 수동적인 수용자가 아닌 능동적인 성찰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삶과 더 깊이 대면하게 된다.
오직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 공감과 울림
작가가 이 책을 두고 "평생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글"이라고 표현한 것은 2 이 책이 지닌 특별한 무게감을 암시한다. 이것은 작가 인생의 특정 시점에서 길어 올린,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경험과 성찰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3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독자들은 작가의 솔직함과 내밀한 고백에 깊이 공감하며, 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계기를 얻는 듯하다.15 특히 작가가 던지는 질문들이 자신의 삶에도 맞닿아 있음을 발견하고, 위로보다는 더 깊은 차원의 연결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인상적이다.21
이 책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랑을 받는 현상은, 어쩌면 우리 시대가 갈망하는 것이 단순한 해결책이나 긍정의 메시지가 아니라, 삶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끌어안고 진솔하게 사유하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김영하라는 신뢰받는 작가가 상실과 나이 듦 같은 보편적인 경험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모습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맺음말: 당신의 '단 한 번의 삶'을 위한 질문
『단 한 번의 삶』은 인생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여정을 항해하는 우리 모두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책이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이라는 등대를 통해 삶의 여러 단면을 비추지만,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독자 스스로 자신의 항로를 고민하고 의미를 찾아 나서도록 격려한다.
이 책은 명쾌한 해답이나 즉각적인 위안을 원하는 독자보다는,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 앞에서 기꺼이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볼 준비가 된 이들에게 더 깊은 공명을 줄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오랜 팬이라면 그의 한층 깊어진 내면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그의 글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삶을 대하는 진지하고도 섬세한 태도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어떻게 펼쳐나갈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사려 깊은 동반자다.